요한복음 10장은 신약성경 중에서도 예수님의 정체성과 사역, 그리고 리더십의 본질을 가장 명확하게 보여주는 장 중 하나입니다. 특히 “선한 목자”와 “삯꾼 목자”의 대조는 단순한 비유를 넘어서, 영적인 본질과 공동체 안에서의 리더 역할, 그리고 구원에 대한 메시지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본문을 통해 우리는 예수님이 말씀하신 ‘선한 목자’가 무엇인지, 반대로 ‘삯꾼 목자’가 어떤 위험을 초래하는지를 깊이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예수님의 비유가 당시 유대 사회에서 어떤 의미를 가졌는지, 그리고 오늘날 우리의 삶 속에 어떻게 적용되는지를 다각도로 살펴봅니다.
1. 선한 목자는 헌신과 사랑의 리더
예수님은 자신을 “선한 목자”로 소개하십니다. 요한복음 10장 11절에서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라고 말씀하신 구절은 단지 자아 소개가 아니라, 예수님의 사역 전체를 요약하는 선언입니다. 여기서 '선한'이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καλός(kalos)'이며, 도덕적 우수함뿐 아니라 본질적으로 아름답고 완전한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예수님이 단지 '좋은 사람'이 아니라, 온전한 사랑을 지닌 구원자이심을 드러냅니다.
선한 목자는 양을 인도하고 보호할 뿐 아니라, 양을 위해 위험도 감수하며 궁극적으로는 자신의 생명까지 내어놓습니다. 이는 예수님의 십자가 사역을 예고하는 것으로, 구속의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양과 목자의 관계는 단순히 지도자와 피지도자의 관계를 넘어섭니다. 예수님은 “나는 내 양을 알고, 내 양도 나를 안다”고 하셨습니다(요 10:14). 이 ‘안다’는 표현은 지식적 암기나 외형적 이해가 아닌, 깊은 교제와 친밀한 관계를 뜻합니다. 양 한 마리 한 마리를 알고 부르시는 예수님의 모습은 우리 각 개인의 상황과 마음을 헤아리시는 하나님의 성품을 보여줍니다.
또한 예수님은 “내 양은 내 음성을 듣는다”고 하셨습니다. 이는 양이 목자의 목소리를 식별하고 신뢰한다는 의미입니다. 신앙생활에서 이는 곧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삶을 의미합니다. 선한 목자는 방향을 제시하고, 길을 잃은 양을 찾으며, 이끄는 이로서 공동체에 질서와 안전을 제공합니다. 예수님은 그런 리더이십니다. 그의 인도하심은 절대적이며, 그의 손에서 벗어날 자는 없다고 하셨습니다(요 10:28).
2. 삯꾼 목자는 자기 이익만 추구하는 지도자
이에 반해 삯꾼 목자는 예수님이 경고하신 리더의 반면교사입니다. 요한복음 10장 12-13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삯꾼은 목자가 아니요 양도 자기 것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물어 가고 또 해치느니라. 달아나는 것은 그가 삯꾼인 까닭에 양을 돌보지 아니함이라.” 삯꾼 목자는 양을 진심으로 돌보지 않습니다. 그에게 양은 보호하고 사랑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수익의 도구일 뿐입니다.
삯꾼 목자는 책임을 다하지 않고, 위험이 다가오면 자신을 먼저 생각합니다. 양의 안전보다 자기 안전을 우선시하며, 본인의 이익이 위협받을 때는 공동체를 버립니다. 이러한 모습은 당시 유대 사회의 종교 지도자들, 즉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을 겨냥한 강한 비판이기도 했습니다. 그들은 율법과 전통을 앞세워 백성 위에 군림했으며, 정작 백성들의 고통과 영적 필요에는 무관심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위선을 지적하며, 삯꾼의 모습을 통해 본을 삼지 말라고 경고하신 것입니다.
이 메시지는 현대 사회에서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정치, 종교, 교육, 심지어 가정 안에서도 삯꾼 같은 리더는 존재합니다. 책임과 희생보다는 명예와 이익을 우선시하는 리더십은 결국 공동체를 병들게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그런 리더가 아닌, 선한 목자의 리더십을 따르라고 말씀하십니다. 참된 지도자는 권위를 사용해 지배하는 사람이 아니라, 헌신으로 섬기고 생명을 나누는 사람입니다.
3. 예수님의 비유의 당시 상황과 오늘날의 적용
요한복음 10장은 단지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라, 예수님이 유대 사회에서 실제로 경험하신 상황과 긴밀히 연결된 메시지입니다. 요한복음 9장에서 예수님은 날 때부터 맹인 된 자를 고치셨고, 그 사건으로 인해 바리새인들과 충돌이 생겼습니다. 그들은 고침 받은 사람을 조사하고, 회당에서 추방했으며, 예수님을 비방했습니다. 바로 그 사건 직후 예수님은 요한복음 10장에서 이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단순한 우화가 아니라, 당시 종교 지도자들의 본질을 고발하는 메시지였습니다.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은 맹인을 고쳐 그에게 생명과 진리를 주셨지만, 삯꾼인 바리새인들은 그를 사회에서 배제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문’이며, 양이 들어가 생명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선언하십니다(요 10:9). 이는 배타적인 구원관처럼 들릴 수 있으나, 사실은 예수님 안에만 참된 보호, 인도, 생명이 있다는 선포입니다.
또한 예수님은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 10:10)라고 하셨습니다. 도둑과 삯꾼은 공동체를 파괴하고, 양의 생명을 위협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와 정반대로 오셨습니다. 그는 양을 살리고, 더 풍성한 삶을 주기 위해 오신 참된 목자이십니다. 이 구절은 복음의 핵심 요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이 비유는 우리 삶에 깊은 질문을 던집니다. “나는 어떤 리더를 따르고 있는가?”, “나는 공동체 안에서 누구에게 영향을 주고 있는가?”, “나는 선한 목자의 음성을 듣고 있는가?”라는 자아 성찰이 필요합니다. 또한 목회자, 교사, 부모, 리더의 위치에 있는 이들은 ‘나는 삯꾼 목자인가, 선한 목자인가’를 매일 되물어야 합니다.
삯꾼 목자는 무관심과 자기 중심성의 상징입니다. 반면 선한 목자는 책임과 희생, 사랑의 상징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양의 위치에서뿐 아니라, 목자의 역할로도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서로를 돌보고, 아끼며, 사랑하며 살아가는 공동체 안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마음을 실천할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10장의 말씀은 예수님의 영원한 정체성과, 우리가 따라야 할 삶의 기준을 제시하는 강력한 선언입니다. 예수님은 오늘도 선한 목자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그의 음성을 듣고, 그 길을 따르는 자는 진정한 생명과 평안을 누릴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