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은 신약성경 중 유일한 예언서이며, 종말과 심판, 회복에 대한 계시를 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책은 단지 미래에 대한 예언서만이 아니라, 실제로 당시 교회가 처한 박해 속에서 기록된, 신앙공동체를 위한 위로와 권면의 메시지입니다. 요한계시록 1장 9절부터 11절은 그 시작점에서, 계시의 전달자 사도 요한의 정체성과 처한 상황, 그리고 계시의 대상이 되는 일곱 교회가 언급됩니다. 이 본문은 성경이 기록된 배경을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이며, 초대 교회 성도들이 어떤 현실 속에서 신앙을 지켰는지를 보여줍니다.
1. 네로 황제의 박해와 기독교
기독교에 대한 첫 번째 공식적인 박해는 로마 황제 네로(Nero)에 의해 시작되었습니다. AD 64년, 로마 대화재는 도시의 대부분을 삼켜버렸고, 이에 대한 대중의 비난을 피하기 위해 네로는 그 책임을 신흥 종교였던 기독교인들에게 돌렸습니다. 그 결과 수많은 성도들이 체포되어 참혹한 형벌을 받았습니다. 일부는 짐승의 가죽을 입고 경기장에서 찢기고, 또 다른 이들은 화형에 처해졌으며, 밤에는 불타는 횃불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박해는 단순한 종교적 차별을 넘어 정치적, 사회적 희생양 만들기의 일환이었고, 동시에 기독교에 대한 로마의 체계적인 억압의 시작이었습니다. 네로 시대의 박해는 베드로와 바울과 같은 사도들의 순교로 이어졌고, 그 영향은 이후 도미티안, 트라얀, 하드리아누스 등으로 이어지는 박해의 서막이 되었습니다.
사도 요한은 네로 시대에 젊은 사도로서 이 박해를 직접 목격했으며, 수십 년이 지난 후 도미티안 황제 치하에서 유배당하는 시점에도 그 고통스러운 기억은 여전히 생생했을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장 9절에서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는 표현은 단지 상징적인 언어가 아닌, 실제 역사적 현실을 살아낸 자의 고백이었습니다. 이 말씀은 모든 성도가 함께 고난을 당하고 있다는 연대감을 표현하며, 성도들에게 ‘함께 견디자’는 공동체적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박해 속에서 요한계시록은 위협적인 상징으로만 읽혀서는 안 됩니다. 그 안에는 고통받는 이들을 향한 하늘의 시선, 그리고 끝내 하나님의 통치가 임한다는 소망의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네로 황제의 잔혹한 통치 속에서도 교회는 사라지지 않았고, 오히려 박해 속에서 더 순수하고 강한 믿음으로 정금처럼 연단되었습니다.
2. 도미티안 황제의 유배정책과 밧모섬
요한계시록 1장 9절에 등장하는 밧모섬은, 사도 요한이 복음 때문에 유배된 장소입니다. 밧모섬은 에게해에 위치한 작은 섬으로, 당시 로마 제국은 정치범이나 종교범을 이곳에 유배시키는 정책을 사용했습니다. 이 유배는 일반적인 감금이 아닌, 강제적 고립과 고된 노동을 포함한 처벌로, 실질적인 사형 선고에 가까운 조치였습니다.
당시 로마 황제 도미티안(Domitian)은 정치적으로 매우 독재적이고 강압적인 통치를 했습니다. 그는 자신을 "dominus et deus" — 즉 '주님이자 하나님'이라 칭하며 황제숭배를 강제했습니다. 이러한 제도는 로마 제국의 통일성과 충성 맹세를 유지하는 수단이었지만, 기독교인들에게는 신앙의 정체성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제도였습니다.
기독교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며, 어떤 인간도 하나님으로 숭배할 수 없다고 믿었습니다. 이런 고백은 곧바로 반역죄에 해당하며, 로마에 대한 불충으로 간주되었습니다. 이러한 시대 상황에서 요한은 복음을 증거한 죄로 밧모섬으로 유배되었으며, 그는 그곳에서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거”로 인하여 고난당하는 현실을 온몸으로 체험하고 있었습니다.
요한계시록 1장 10절은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되어 내 뒤에서 나는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의 날'은 대부분 주일(일요일)로 해석되며,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는 날이자 초기 기독교 공동체의 예배일이었습니다. 이 날 요한은 영적으로 깊은 감동 속에서 환상을 경험하게 되었고, 이는 단순한 주관적 느낌이 아닌, 성령의 강권적인 개입 속에서 시작된 계시였습니다.
도미티안 치하의 교회들은 내부적으로도 많은 도전과 혼란을 겪고 있었습니다. 일부 교회는 믿음을 버리고 세속적 가치에 물들었고, 일부는 박해 속에서 절망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이러한 시점에서 요한은 밧모섬이라는 고립된 장소에서 모든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말씀을 받게 되었으며, 그 계시는 단지 문자로서의 글이 아닌, 각 교회가 시대적 영적 현실 속에서 취해야 할 태도를 명확히 제시하는 영적 나침반이 되었습니다.
3. 유배와 계시와 사도 요한의 사명
사도 요한은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 한 사람이며, 요한복음, 요한일서·이서·삼서를 기록한 사도입니다. 요한은 오랜 사역을 거쳐 노년에 접어들 무렵에도 여전히 복음을 전파하고 교회를 돌보는 일을 감당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당대에 마지막 남은 사도로, 초대 교회의 정신적 지주이자 신앙의 본보기가 되는 인물이었습니다.
요한계시록 1장 11절에서 하나님은 “네가 보는 것을 책에 써서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 곧 에베소와 서머나와 버가모와 두아디라와 사데와 빌라델비아와 라오디게아에 보내라”고 명령하십니다. 이는 단지 하나의 공동체에 국한된 말씀이 아니라, 초대 교회를 대표하는 일곱 교회를 통해 모든 시대의 교회에 전하는 하나님의 메시지였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하나님께서 요한을 유배지에 두신 상황 속에서도 그를 사용하신다는 점입니다. 요한은 물리적으로 고립되어 있었지만, 영적으로는 우주적 통치를 보는 자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이는 우리가 신앙생활에서 직면하는 고난이나 외로움이 결코 하나님의 사명을 막지 못함을 보여주는 명확한 예시입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인간의 절망과 단절의 자리를 계시의 무대로 사용하십니다.
또한, 요한이 계시를 받을 때의 상태는 '성령에 감동되어'였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영적 체험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전달할 수 있는 영적 민감함을 의미합니다. 요한은 연약한 육체와 고된 유배의 환경 속에서도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을 만큼 깨어 있었고, 이는 오늘날 신앙인들에게도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환경이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영적 상태가 하나님을 만나는 데 있어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입니다.
적용
오늘날 우리는 더 이상 도미티안 황제와 같은 물리적 박해를 직접 경험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신앙을 가진 자로서 여전히 세상의 압력과 가치관 속에서 정체성을 지키는 일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직장, 학교, 사회 속에서 ‘예수만이 주님’이라는 고백은 때때로 불이익과 소외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1장 9~11절은 고난의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그 한복판에서 하나님의 계시를 들을 수 있는 삶의 자세를 가르쳐 줍니다. 사도 요한은 유배라는 인간적 절망의 장소에서 오히려 하나님의 가장 깊은 계시를 경험했습니다. 우리의 밧모섬은 무엇입니까? 그것이 외로움이든, 병이든, 실패이든, 하나님은 그곳에서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요한처럼 주의 날에 깨어 있어야 합니다. 성령에 감동되기 위해 우리의 영을 깨우고, 세상의 소리보다 하나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또한, 우리에게 들려진 말씀은 나 혼자만 간직할 것이 아니라, 공동체에 전달되어야 합니다. 요한은 받은 계시를 일곱 교회에 보냈고, 우리는 받은 은혜를 우리의 가정, 교회, 일터에 흘려보내야 합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 다시금 깨달아야 할 것은, 하나님의 말씀은 박해 속에서도 살아 있고, 절망 속에서도 역사한다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있는 그 자리, 그 고난 속에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사명을 주십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네가 보는 것을 책에 써서, 교회에 전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