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1장은 복음의 서론이자 인간의 타락한 본성을 가장 극명하게 드러내는 성경 본문 중 하나로, 바울의 서신서 전체를 관통하는 복음의 논리를 구조화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합니다. 본 장은 진리와 불의, 자연계시와 특별계시, 인간 타락 전후의 상태, 그리고 복음과 하나님의 진노를 강렬하게 대조하여 신학적으로 깊이 있는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바울은 단순히 죄를 비판하거나 종교적 행위를 요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인간이 하나님을 떠난 결과로 어떤 결과를 맞게 되었는지를 구조적으로 서술하며, 복음 외에 구원이 없음을 논리적으로 전개합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여러 비교 항목은 오늘날 우리 삶 속에서도 적용 가능한 중요한 신학적 개념으로, 복음이 단지 신앙생활의 출발점이 아닌, 존재의 근본 회복이라는 점을 일깨워 줍니다.
1. 진리와 불의의 충돌
로마서 1장 18절은 이렇게 선언합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나나니.” 여기에서 바울은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자들’에게 향하고 있다고 단언합니다. 이 구절은 인간의 죄를 단지 실수나 무지의 결과로 보지 않고, 의도적인 진리의 억압으로 묘사합니다. ‘막는다’는 원어 헬라어 ‘카테코(κατέχω)’는 억누른다는 뜻으로, 이는 인간이 하나님의 진리를 본능적으로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거부하고, 억누르고, 대체하려고 시도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진리’는 단순한 윤리적 명령이나 성경 지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존재 자체를 가리킵니다. 진리는 곧 하나님이시며, 그분의 뜻, 성품, 영광, 구속 계획 전반을 포함합니다. 인간이 진리를 억누르는 것은 곧 하나님 자체를 거부하는 것이며, 이는 곧 영적 반역이자 전인격적 타락을 의미합니다. 불의는 이런 반역의 결과로 삶 전체에 침투하여 도덕적, 윤리적 기준을 흐트러뜨립니다. 불의는 단지 개인의 윤리적 실수가 아닌,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된 상태에서 나타나는 총체적인 인격적 왜곡입니다.
진리와 불의는 본질적으로 양립할 수 없습니다. 바울은 이를 충돌 구조로 설명하면서, 복음이 이 충돌을 종결시키는 유일한 방법임을 제시합니다. 복음은 진리를 회복시키고, 불의로 인해 왜곡된 인간 존재를 다시 정위치에 놓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이 비교는 단순히 죄와 구원의 문제를 넘어서, 존재론적인 회복의 문제로 확장됩니다. 인간은 스스로의 노력으로 진리를 회복할 수 없기에, 오직 복음 안에서만 진리와의 일치를 회복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바울은 로마서 1장 초입부터 복음을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롬 1:16)으로 선언하며, 진리-불의의 충돌이 복음 안에서 해소됨을 강조합니다.
2. 자연계시와 특별계시의 비교
바울은 1장 19~20절에서 일반계시, 즉 자연계시에 대해 설명합니다.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그들에게 보이셨느니라...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이 구절은 모든 인간에게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주어졌음을 분명히 밝힙니다. 이는 신학적으로 ‘자연계시’ 또는 ‘일반계시’라 불리며, 창조 세계와 양심을 통해 하나님에 대한 기본적 인식이 가능하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자연계시는 인간을 구원에 이르게 하지는 않습니다. 자연계시는 하나님의 존재와 능력을 인식하게는 하지만, 죄로 인해 왜곡된 인간의 인식 능력은 그것을 올바로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바울은 인간이 자연계시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그 마음이 허망하여졌고, 우상으로 대체했다고 말합니다. 이는 자연계시가 인간에게 책임을 묻기 위한 근거는 될 수 있어도, 구원의 수단이 되기 어렵다는 점을 드러냅니다.
이에 반해 특별계시는 성경, 선지자,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주어진 하나님의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계시입니다. 특별계시는 죄의 문제를 진단할 뿐 아니라, 그 해결책까지도 제시합니다. 자연계시가 하나님의 존재와 영광을 지시한다면, 특별계시는 그 하나님께 어떻게 나아갈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바울은 복음을 통해 이 특별계시를 선포하며, 인간이 진리로 돌아올 수 있는 유일한 길로서 복음을 소개합니다. 자연계시와 특별계시의 비교는 단순한 지식의 수준 차이가 아니라, 구원의 여부를 가르는 본질적 차이를 의미합니다. 이러한 구분은 신학적으로 구원론과 계시론의 기초를 형성하며, 바울의 복음 이해를 뒷받침합니다.
3. 타락 전후 인간 존재의 비교
로마서 1장 21절부터는 인간 타락의 구체적 과정이 묘사됩니다. 바울은 인간이 하나님을 알면서도 감사하지 않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 않았다고 지적합니다. 이는 인간의 죄가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알면서도 의도적으로 하나님을 거부한 데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합니다. 그 결과, 인간의 생각은 허망해졌고, 미련한 마음은 어두워졌으며, 결국 썩어질 형상을 하나님의 영광 대신에 숭배하게 되었습니다.
타락 전의 인간은 창조주와의 올바른 관계 안에서 존재하며,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분의 뜻을 따르며 사는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타락 후의 인간은 그 관계가 파괴되고, 중심이 하나님에서 자기 자신과 피조물로 옮겨집니다. 이는 존재의 전면적인 전락을 의미하며, 단순한 도덕적 실패 이상입니다. 인간은 더 이상 진리를 수용할 수 있는 마음과 삶의 구조를 갖고 있지 않게 되며,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는 상태에 놓입니다.
이러한 전락은 우상숭배로 이어집니다. 하나님을 중심에서 제거한 인간은 그 빈자리를 피조물로 채웁니다. 이는 고대 종교의 신상 숭배뿐만 아니라, 오늘날의 자기 우상화, 물질 숭배, 성공 중심적 사고방식 등 다양한 현대적 양상으로 나타납니다. 이 과정 속에서 인간은 정욕에 사로잡히며, 성적 왜곡과 도덕적 혼란, 사회적 붕괴로 이어지는 삶을 살게 됩니다. 바울은 이를 '하나님께서 내버려 두셨다'는 표현으로 설명하며, 죄가 심판을 부르는 것이 아니라 죄 자체가 이미 심판의 결과임을 나타냅니다.
결국 복음은 이 타락의 결과를 치유하는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주어진 특별계시는 인간이 다시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왜곡된 정체성과 삶의 구조를 재정립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입니다. 바울은 타락의 실체를 낱낱이 보여주며, 복음이 단순히 죄 사함만이 아니라, 인간 존재의 전적인 회복임을 강조합니다. 진리 안에서의 존재로 다시 서기 위해, 인간은 복음에 응답해야 합니다. 이것이 로마서 1장이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는 근본 메시지입니다.